번역의 공격과 수비 / 안정효 교수님 entry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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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공격과 수비 / 안정효 교수님 entry 3

드디어 이번주에 챕터 6까지 읽어냈다. 매 챕터마다 번역부터 먼저하고 확인하는 게 재미가 쏠쏠하다.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봤을 땐 참 어려웠는데 왜 그랬나 싶다. 지금 읽으니 너무 재미있음 ㅠㅠㅠ

<챕터5 대화체> 배울점&공감한 점

1) 대화체는 ‘귀로 하는 번역’이다. 대화체를 번역할 때는 존칭어를 쓰는지, 대화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을 잘 살펴보고 번역해야 한다.

ex. Mr를 무조건 “씨”로 번역하면 안된다. “씨”는 동격이거나 손아랫사람을 부르는 말로 격하되었고 손윗사람은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2) 단위도 번역하자 – 피트, 파운드, 야드, 마일과 같은 수치는 미터법으로 환산하여 번역하자. 우리나라 독자들은 미터법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솝우화나 토속적인 소설의 경우 ‘8킬로미터’를 ‘20리’ 라고 번역하는 시도까지 해보자. 

의문

1) p.197에는 ’postmodernism’을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순한국어로 바꿔보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말로 정확히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영어는 알면서도 우리말은 모른다면, 과연 그것이 아는 단어요 아는 개념일까?”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엔 별로 동의가 안된다. 한국어든 영어든, 언어를 떠나서 어떤 개념이 무슨 단어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도 그 개념을 알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에글릿이나 가름끈이라는 단어를 몰라도 그 개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에글릿은 신발끈 등에 금속을 이용해서 꼬여있는 끈이 풀리지 않게 고정하는 피복제품이고 가름끈은 우리가 보통 북마크라고 알고 있는 책 사이에 끼워두는 끈을 말한다.)

2) <옥스포드 영화 연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딥포커스,’ ‘롱테이크,’ ‘줌’등을 쓰지말고 순한국어를 쓰자고 하는 부분이 있다. ‘롱테이크’를 ‘길게 찍기’라고 하자는데… 이건 번역가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영화계에서 감독이나 배우, 전문가들이 실전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영어냐 일어냐 아니면 한국어냐의 문제다. 이 부분은 현실은 완전히 배제한 주장같아서 동의가 잘 안된다.

p.211

역시나 챕터6에 들어가기 전에 번역부터. 처음에는 한 편만 있는 줄 알고 The Frog & The Ox. 를 번역해서 프린트해놓고 프린터기를 끄고 나니 뒷장에도 있어서 또 번역해서 다시 또 프린트를 했다. 

<챕터6 번역이 아닌 ‘창작’> 

배울점&공감한 점

1) 이번 과에는 ‘우화’를 번역한다. 그래서 문체는 어린이에게 어른이 읽어주는 구연 동화체 (서술적 대화체)로 번역해야 한다. 다행히도 읽다가 우화라는 걸 눈치채고 ‘옛날 옛적에~’ 말투로 번역을 했다.

2) 이번 번역 과제는 간접 화법으로 되어 있는데 ‘간접 화법을 직접 화법으로 마음대로 변형해서 번역’하면 안된다고 되어있다.

3) 사지선다형 번역을 하지 마라. 두 세개의 번역을 해놓는 것보다 하나만 답을 내야 한다. 교수님이 책에 실어놓은 학생들의 과제물에는 괄호를 넣고 한 문장을 두 개로 적은 경우가 많았다. 현업에 있어서 그런지 답변을 보고 놀랐다. 하나를 두 개로 번역해놓다니.. 아무리 과제여도 그렇지 ㅠ

4) 쓸데없는 진행형 번역을 하지 마라, 소유격이나 복수형 수식어를 이상한 번역투로 적어두지 마라. => 이렇게 규칙을 일일이 외울 수는 없는 법이다.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이나 책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해결되는 부분인 듯 하다.

5) 원문에 없는 것을 (쓸데없이) 마음대로 창작해서 적으면 안된다.

의문

1) 기초 첫걸음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없애는” 훈련을 한다. “있다,” “수,” “것” 등을 없애는 것이다. 위 표현을 너무 남발해서 글을 읽기가 불편스러울 정도라면 몰라도 아예 죄다 없애자고 하면 문체의 자유도 없어지게 된다. 평소에 저런 단어를 자주 쓰는 편은 아니지만 아예 쓰지 말라고 하니 노이로제가 생길 ‘것’ 같다.

2) 원작과 독자 사이에서 번역가는 눈에 보이지 말아야 한다… 나도 이걸 철썩같이 믿고 거의 10년간 일해왔는데 최근 정영목 교수님의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를 동시에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